직장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 이를 정리하고 제 생각도 정리하고자 글을 씁니다.
저는 외국계 반도체 계측 장비 업체에서 필드 어플리케이션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는일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고객사에 설치된 저희 장비로 고객사 웨이퍼를 측정하고, 결과를 분석해서 본사 및 고객과 공유를 합니다.
이번에 있었던 일은 제가 공유한 데이터가 조작되어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래는 있었던 일입니다.
9월 19~20일
- 측정한 결과를 한국 지사 매니저님과 공유하였습니다. (보통 매니저님이 측정 결과로 ppt를 만들고 고객 미팅에서 발표를 하십니다.)
9월 21일
- 매니저 님이 ppt를 본사와 공유를 하였고, 몇차례 메일이 오고갔습니다.
- 저는 메일는 보았지만 첨부된 ppt를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제가 드린 결과를 ppt로 만드신거지 기술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휴가이기도 하였습니다.
9월 22일
- 고객 미팅에 참여하면서 자료를 처음 보았습니다.
- 자료에 있는 결과가 너무 좋았습니다. 간단히 비유하면 10번 반복 측정한 결과의 standard deviation이 실제로는 15정도 되는데 적혀져 있는 값은 4~8 정도였습니다.
- 고객 미팅이 끝나고 매니저님께 어찌된건지 물어보니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드린 데이터로는 그렇게 낮은 값이 나올 수 없기에 조작하신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같이 있던 다른 엔지니어분이 데이터가 어떻게 된지만 clear하게 해달라고 하셨고, 자리를 파하였습니다.
- 확인해보니 본사와 공유한 ppt에도 낮은 값으로 적혀있었습니다.
- 매니저님이 본사에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값을 cherry pick하였고, 이를 modify했다고 쓰셨습니다. 이 메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변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9월 23일
- 매니저님은 본사에 메일을 보냈으니 본사와는 align이 된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9월 28일
- 지사장님이 본사 출장에서 돌아오셔서 아침에 3명이 같이 미팅을 하였습니다. 조작건에 대한 미팅은 아니였고 출장 갔다오신 중에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자리였습니다.
- 매니저님은 데이터를 조작하셨다는 것에 대해 명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제가 드린 데이터로는 이 값이 나올 수 없다고 지사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결국에는 매니저님이 조작하신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 이 미팅 자리에서 지사장님은 고객에게 알리지 말고 일단은 이대로 두자고 말씀하셨습니다.
- 오후에 본사와 미팅이 있었고, 제가 측정 결과에 대해 발표를 해야 했습니다.
- 저는 제가 측정한 결과를 보여주었고, 본사에서는 제 결과가 고객 레포트의 자료와 왜 다른지 물어보았습니다.
- 매니저님은 명확하게 답변하시지 못하셨고, 지사장님은 cherrypick하고 offset을 보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는 offset 보정 외에도 값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
- 저녁에 제 아버님, 전 직장 상사와 전화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논의하였습니다. 이미 마음은 이걸 밝히고 그만 두는 걸 생각하였습니다 만 저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 그날 밤에 저는 CEO, 본사 매니저들, 지사장, 한국 매니저님께 해당 데이터가 조작되어 있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 추가로 제가 보낸 메일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같이 일했던 본사 매니저 중 한명에게 전화하여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전달하였습니다.
9월 29일
- 아침에 지사장님에게 그만 두겠다고 하였습니다. 1시간 정도 얘기를 하였지만 제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 오후에 고객 미팅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고객 미팅 자료에는 아직 조작된 데이터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CEO가 이 데이터는 리뷰가 필요하니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합니다.
9월 30일
- CEO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제가 나간다는 걸 일단 전해들은 상태였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나가지 말고 자기를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이 뜬 상태였기에 거절하였습니다.
- 조작된 데이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지사장, CEO, 본사 엔지니어 2명, 제가 미팅을 하였습니다. CEO는 다시 측정을 진행해서 다음주 미팅에서 고객에게 업데이트를 하고, 고객에게도 데이터가 조작되었음을 알리자고 하였습니다.
여기부터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만 두기로 결정을 내린 제 개인적인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번 사건이 trigger가 되긴 했지만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저는 마음이 좀 떠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이번 사건은 선을 크게 넘었지만 이전부터 유사한 행위가 본사에서도 공공연하게 있었고, 저는 이게 바뀌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 20번 측정을 하고 값이 좋은 것만 10개 뽑아서 사용하기.
- 주요 모듈 1개로 4번 측정해서 4개로 측정한걸로 꾸미기
- 고객과는 align하지 않고 측정 방법을 바꾸기.
- 장비 상태가 안좋은데 이를 숨기기. (고객쪽에서는 항상 결과를 공유하고 논의하기를 바랐습니다.)
- 저는 이런게 회사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이는 CEO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9월 30일에 CEO와 통화를 했을 때, 이를 지적을 했을 때 자기는 모르고 있었고 같이 개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본사 엔지니어와 얘기했을 때 CEO는 모를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장비를 shipping하기 전에 주요 모듈이 1개밖에 준비가 안되었기에 4개로 측정을 못하는 상태였으니까요. 결과적으로 CEO는 저를 붙잡을 생각만 한거지 생각을 바꾼게 아닙니다.
2. 회사는 항상 고객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였고, 말도 안되는 일정을 얘기하였습니다.
- 실제로는 장비는 항상 불안정하였습니다. 특히나 작년의 경우 주요 모듈 4개 중 1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 그런 상태에서 고객에게는 3개월이면 다 고칠 수 있다고 얘기하였습니다. 한국에 출장왔던 엔지니어들은 모두 3개월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제로 이제서야 4개가 모두 작동하는 상태가 되었고 1년 이상 걸렸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말도 안되는 목표를 세웁니다. 공식적으로는 10월까지 JDP 완료를 목표로 합니다만 측정해야 하는 wafer중 완료된건 하나도 없습니다.
- 고객을 직접 접하는 저는 상당한 괴리를 맞이하게 됩니다. 실제로 잘 안되는걸 알면서도 고객에게는 잘되는 척을 해야 합니다. 고객사 엔지니어중 한분은 일주일에 3~4번 장비에 찾아오셔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시기에 실제로 이걸 숨길 수는 없습니다. 대충 얼버무리는 정도입니다.
3.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도 일단 큽니다. https://iroseoro.tistory.com/3
4. 저는 데이터가 조작된 것을 보고 일단 매니저님이나 지사장님이 밝히길 바랐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같이 일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두가 align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 방향은 지사장님과 매니저님이 리드를 하시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리드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제가 엔지니어가 아니라 매니저가 됬어야 합니다. 그런 바람 때문에 저는 부정을 보고서도 바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자기 합리화 일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9월 22일에 매니저님이 조작하신 걸을 본 후로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9월 28일에 지사장님도 이를 밝히지 않은 시점에서 저는 그만두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일을 돌이켜 보면 좀더 좋은 선택을 할 여지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1. 9월 22일 혹은 23일에 제가 본사에 조작 사실을 알렸어야 합니다.
2. 9월 28일에 매니저/지사장/제가 미팅할 때 이를 밝혀야 한다고 더 강하게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3. 아니면 9월 28일에 본사와 미팅을 할 때 저라도 알렸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4. 매니저님이 작성한 ppt를 제가 확인을 못한 건 개선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회사는 스타트업이기에 업무는 넘쳐나고 이메일은 다 읽지도 못합니다. 특히나 저는 팹에서 매일 6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기에 이메일을 다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데이터를 조작할거라고 의심하고 다 검수를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애당초 그런 사람을 인사 단계에서 걸러내야지 들어오게하는게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회사 차원에서 고객사에 알린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놓이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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